분자유전학실험실 (단국대학교 분자생물학과)



 이성욱 ( 2013-05-09 17:38:44 , Hit : 2877
 분자생물학의 거성(巨星) 떨어지다; 프랑수아 자콥의 삶과 업적

[강석기의 과학카페 125]
더사이언스 | 기사입력 2013년 05월 07일 14:36 | 최종편집 2013년 05월 07일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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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균에서 맞는 사실은 코끼리에서도 맞는 사실이다.” -  프랑수아 자콥



분자생물학의 개척자인 프랑수아 자콥이 올해 4월 20일 93세로 타계했다. 1965년 노벨상을 받은 직후인 45세 무렵의 모습이다. - 노벨재단 제공
분자생물학의 개척자인 프랑수아 자콥이 올해 4월 20일 93세로 타계했다. 1965년 노벨상을 받은 직후인 45세 무렵의 모습이다. - 노벨재단 제공   20세기 중반 분자생물학을 개척한 과학자들 중 두 사람이 짝을 이룬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올해 발견 60주년을 맞은, DNA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대표적이다. 이들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대장균에서 '오페론'이란 유전자 발현의 조절 단위를 밝힌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프랑수아 자콥과 자크 모노도 있다. 그 프랑수아 자콥(François Jacob)이 지난 4월 20일,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중나선’을 쓴 왓슨이 크릭보다 대중에게 더 친숙한 것처럼 1971년 ‘우연과 필연’을 출간한 모노가 자콥보다 더 알려져 있다. 사실 ‘우연과 필연’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책 ‘부분과 전체’와 함께 과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최고의 명저라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물론 격조 높은 책 제목도 한 몫 했겠지만.



  필자는 수년 전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힌 노벨화학상 수상자 막스 페루츠의 과학에세이집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에서 프랑수아 자콥의 삶을 다룬 한 장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나 다시 찾아 읽어봤다.



  1988년 출간된 자콥의 자서전 영문판 ‘The Statue Within’에 대한 서평인데, 그 때의 감동이 틀린 기억은 아니었다. 아마 유명한 과학자 가운데 자콥만큼 극적인 삶은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찾아보니 1987년 출간된 자콥의 자서전은 1997년 ‘내 마음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한글판도 나왔다. 페루츠의 서평과 ‘내 마음의 초상’을 바탕으로 자콥의 삶과 업적을 요약해 볼까 한다.



● 부상으로 외과의사의 꿈 버려



  1920년 프랑스 파리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콥은 4성장군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자서전 곳곳에서 할아버지의 말을 회상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어린 아이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찬미하는 것은 좋지만 숭배하는 것은 좋지 않단다. 신도 인간도 말이야. 왜냐하면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훗날 자콥이 보통 사람 같으면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겪으면서도 무신론을 버리지 않았고 운 좋게 파스퇴르연구소 같은 일류 지성들의 집단에 들어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외할아버지를 쫓아 군인이 되려고 했던 소년은 고등학교 사관학교 준비반의 엄격함에 질려 외과의사가 되기로 진로를 바꿨다. 의대에 진학해 수년이 지나면 외과의사로 탄탄한 삶을 살 것 같았던 자콥에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1940년 히틀러의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해 파리를 점령한 것이다. 이 사건이 있기 며칠 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시련을 겪은 자콥은 고통과 환멸을 느끼며 영국으로 탈출하고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참여해 전쟁에 뛰어든다.



  4년간 아프리카에서 군의관으로 전쟁터를 누비며 숱한 죽음의 위기를 넘긴 자콥은(한번은 튀니지 사막을 헤매다가 독일 병사에게 딱 걸렸는데 모른척해 줘서 그 자리를 벗어난 적도 있단다다), 1944년 노르망 해안에 상륙해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할 때 퇴각하는 독일군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1년간 병상생활은 한 자콥은 간신히 회복됐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좌절뿐이었다.



  친 나치 비시정부 아래서 공부한 대학동기들은 이미 인턴이 됐지만 5년간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건 그에게 돌아온 건 불편해하는 시선뿐이었다. 열다섯 살 때부터 공을 들인 여자 친구 오딜은 그의 병실을 찾은 걸 마지막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자콥은 자서전에서 4년 만에 재회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마치, 서로를 위해, 젊은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사랑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무언중에 동의한 것처럼, 그리고 나서 그녀가 떠나갔을 때,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이 그리워 몹시 고통스러웠다.”



자콥과 함께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을 밝힌 자크 모노. 10살 연상인 모노에 대해 자콥은 자서전에서 “실로 매우 드문, 위대한 인물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지적인 메커니즘의 소유자였고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모노는 1976년 66세에 사망했다. - 노벨재단 제공
자콥과 함께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을 밝힌 자크 모노. 10살 연상인 모노에 대해 자콥은 자서전에서 “실로 매우 드문, 위대한 인물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지적인 메커니즘의 소유자였고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모노는 1976년 66세에 사망했다. - 노벨재단 제공   부상 후유증으로 꿈꾸던 외과의사는 될 수 없었지만 자크는 억지를 쓰다시피 해서(대학은 전쟁영웅에게 많은 걸 눈감아줬다) 1947년 의대를 졸업했고 박사논문 주제였던 항생제를 만드는 작은 제약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이런 삶에 만족할 수 없었던 자크는 방황을 멈추지 못했는데 어느 날 음악회에서 유대계 아가씨 리자를 만난다. 자유 프랑스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오빠를 둔 리자와 자콥은 몇 달 뒤 결혼을 하는데 하루는 리자의 사촌과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자콥과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았던 그 사촌은 뒤늦게 진로를 바꿔 저명한 생물학자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문득 자콥은 자신도 그처럼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회사를 막 그만두고 뭘 해야 할지 몰라 의기소침해 있던 자크는 다음날부터 생물학자가 되기로 계획을 세우고 먼저 안면이 있는 국립과학연구소 에밀 테루안느 교수를 찾아가 “아는 건 없지만 유전학에 헌신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욕망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다음으로 국립위생연구소 뷔이나 소장을 찾아갔지만 역시 정중한(어쨌든 그는 전쟁영웅이었으므로) 거절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찾아간 게 파스퇴르연구소의 자크 트레푸엘 소장. 항생제를 개발한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그는 연구장학금까지 주는 조건으로 그가 들어올 수 있게 해줬다. 이렇게 해서 29세의 엉터리 의학박사 자콥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30살에 시작한 연구원 생활



  이듬해 역시 우여곡절 끝에 자콥은 선망했던 저명한 미생물학자 앙드레 르보프의 실험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구생활이 시작됐다. 르보프는 소수의 인원만으로 실험실을 끌어가는 걸로 유명했는데 자콥 자신도 자서전에서 그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반대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내 실험실에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자크와 모노가 밝힌 락(lac) 오페론의 작동 메커니즘. 위는 억제된 상태로 억제인자(녹색)가 DNA의 특정 염기서열(빨간색)에 결합돼 RNA중합효소(노란색)의 접근을 막기 때문에 전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래는 활성화된 상태로 젖당(흰색)이 결합한 억제인자의 구조가 바뀌면서 DNA에서 떨어져 나가고 RNA중합효소가 작동을 시작해 젖당 분해와 관련된 유전자(6, 7, 8)가 발현된다.
자크와 모노가 밝힌 락(lac) 오페론의 작동 메커니즘. 위는 억제된 상태로 억제인자(녹색)가 DNA의 특정 염기서열(빨간색)에 결합돼 RNA중합효소(노란색)의 접근을 막기 때문에 전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래는 활성화된 상태로 젖당(흰색)이 결합한 억제인자의 구조가 바뀌면서 DNA에서 떨어져 나가고 RNA중합효소가 작동을 시작해 젖당 분해와 관련된 유전자(6, 7, 8)가 발현된다.
  자콥은 이곳에서 대장균의 접합, 즉 대장균 사이의 유전자 이동에 대해 연구했다. 1950년대는 말 그대로 유전학 분야의 혁명기로 유전물질이 단백질이냐 핵산(DNA)이냐는 문제조차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1953년 DNA이중나선 구조 발견은 유전학의 양자도약을 가능하게 한 사건이었다.



  수년간 대장균의 접합을 연구해온 자콥은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연구주제를 찾다가 같은 연구소의 대선배 자크 모노와 공동연구를 하게 된다. 즉 모노가 십 수 년 전부터 고민하고 있던 대장균의 특이한 생태를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든 것.



  평소 대장균은 설탕을 선호하는데 만일 설탕이 없고 젖당만이 있는 환경에 놓이면 처음에는 잘 못자라다가 다시 잘 자라기 시작한다.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지식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노의 고민은 깊었지만 이 현상에는 뭔가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스 영웅과 할리우드 배우를 섞은 것 같은 미남’인 10살 연상 모노의 ‘비웃는 듯한 잔잔한 웃음을 띤’ 얼굴을 맞대며 때로는 자신의 무지에 얼굴을 붉히면서도(반면 모노는 과학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모르는 게 없는 천재였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자크는 대장균 젖산 대사의 미스터리를 고민했고 어느 날 아내와 영화를 보다가 순식간에 그 비밀을 알아냈다.



  즉 대장균의 접합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어떤 유전자 발현 억제 인자가 평소에는 필요없는 젖당분해효소 유전자를 억제하고 있다가 환경의 변화(설탕 부재 젖당 존재)가 오면 억제 인자가 풀리면서 필요한 유전자가 발현된다는 것.



  처음 모노는 자콥의 가설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계속된 토론과 실험을 통해 그의 가설이 본질적으로 맞다는 걸 깨닫고 실험을 계속하고 이론을 가다듬어 그 유명한 ‘오페론(operon) 가설’을 내놓는다.



  즉 대장균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데 필요한 일련의 유전자들의 발현이 동시에 조절되는데 그 단위가 오페론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생각해낸 유전자 발현 조절의 개념은 그 뒤 다세포 생물의 분화는 물론 생명체의 활동을 유전자 차원에서 이해하는데 출발점이 됐다.



   이 업적으로 자콥과 모노는 앙드레 르보프와 함께 196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아마도 1950년 르보프가 자신의 실험실에 자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가 노벨상을 타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콥은 그뒤로도 파스퇴르연구소에 머무르며 1970년대 들어 훨씬 복잡한 생명체인 생쥐로 대상을 바꿔 중요한 기초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11월 14일 파스퇴르연구소에서는 자콥이 참석한 가운데 그의 이름을 붙인 신축건물 완공식이 거행됐다고 한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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