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유전학실험실 (단국대학교 분자생물학과)



 이성욱 ( 2012-08-24 12:05:46 , Hit : 3130
 새롭게 밝혀진 정액(semen)의 비밀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2-08-24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다. 물 위로 드러난 빙산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인간의 정액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정자(sperm)는 정액(semen)의 5%만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정액의 압도적 대다수를 차지하는 95%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저 정자를 보조하는 들러리에 불과할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모종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정자의 운반체(vehicle)로만 알려져 왔던 포유류 수컷의 정액에, 암컷의 배란 및 기타 임신 유지 호르몬 반응(pregnancy-supporting hormonal responses)을 자극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새로운 불임치료 방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포유류 암컷과 마찬가지로 인간 여성은 자발적 배란자(spontaneous ovulators)로 분류되는데, 이는 성적(性的) 활동과 무관하게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난자를 유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낙타나 토끼와 같은 일부 동물들은 성행위에 반응하여 살아 있는 난자를 배출하는데, 이들을 유도적 배란자(induced ovulators)라고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유도적 배란자의 경우, 섹스로 인해 성기에 가해지는 물리적 자극이 암컷의 호르몬 반응을 촉발하여 난자를 생성·배출하게 한다"는 도그마가 지배해 왔다. 그러나 1985년 중국의 연구자들은 "배란 유도자의 정액에는 암컷의 배란을 유도하는 배란유도인자(OIF: ovulation-inducing factor)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기하며 기존의 도그마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이 가설은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당시 많은 과학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캐나다 서스캐처원 대학의 수의학자이자 생식생물학자인 그레그 애덤스 박사도 그런 `몰지각한` 과학자들 중의 하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5년, 애덤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1985년에 제기된 가설을 검증하는 실험을 해 보고는 그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연구진은 수컷 라마(낙타와 근연관계에 있는 동물로, 남미에서 털을 얻고 짐을 운반하게 하기 위해 기르는 가축)의 정액을 암컷 라마의 뒷다리에 주입하고, 암컷 라마가 성기의 자극 없이도 배란을 하는지를 지켜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수컷의 정자를 암컷의 혈류에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암컷의 배란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연구진은 "포유류의 정액 속에는 암컷의 배란을 유도하는 OIF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고, 그 후 7년 동안 정액 속에 존재하는 OIF를 찾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 학술원회보(PNAS) 8월 20일호를 통해 그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연구진은 자발적 배란자와 유도적 배란자의 정액 속에 모두 OIF가 존재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라마와 황소의 정액을 채취하여 분석하였다. 연구진은 정액 샘플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여러 번 회전시켜 정자와 정액을 분리하였다. 연구진은 다음으로, 열과 다양한 단백질 분해효소, 그리고 다양한 사이즈의 필터를 이용하여 정액으로부터 효과분자(effect molecule)를 걸러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연구진은 매 작업단계를 거칠 때마다, 처리된 정액을 암컷 라마의 뒷다리에 주입하여 배란을 일으키는지를 확인하며 OIF 후보자(OIF candidate)의 범위를 좁혀 나갔다. 그 결과 놀랍게도, 암컷의 배란을 유도하는 신비의 물질(OIF)은 다름 아닌 「감각신경의 발달과 생존에 필수적인 단백질, 즉 신경성장인자(NGF: neural growth factor)」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OIF라는 이름의 성배(holy grail)를 찾아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찾던 성배는 많은 포유류 종(種)들의 체내에 존재하는 흔한 분자로 밝혀졌다. 우리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서로의 열굴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고 애덤스 박사는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NGF는 1980년대 초반 황소의 정액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지만, 그 후 30여 년이 지나도록 그것이 수정 및 임신의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를 밝혀낸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이제서야 그 의문을 풀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연구진은 다양한 포유류의 정액을 분석한 결과,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포유류의 정액 속에서 NGF를 찾아냈다. 한편 연구진은 또 다른 실험을 통해, NGF가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배란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예컨대 수퇘지, 토끼, 말의 정액이 암컷 라마의 배란을 유도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수컷 라마의 정액은 사춘기 이전 마우스에게서 배란을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NGF는 연구진이 연구한 자발적 배란자(암소)의 배란을 유도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임신촉진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그것은 난포의 발육 타이밍을 변화시키고, 황체의 발육과 기능을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난포는 난자를 감싸는 역할을 하며, 황체는 임신의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일시적 내분비 구조체이다.)

"수컷의 정액 속에 포함된 NGF(또는 OIF)가 생식기 점막을 통과한 다음, 암컷의 전신으로 퍼져 배란유도 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NGF가 인간의 임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기획 중이다. "우리는 OIF와 불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연구하려고 한다. 예컨대 정액 속의 OIF 농도가 높은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생식능력이 뛰어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OIF를 이용한 치료가 불임 부부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번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고 미국 오레곤 보건과학대학에서 「뉴로트로핀(neurotrophins: NGF를 포함하는 단백질群)이 여성의 생식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연구하고 있는 서지오 오제다 박사(신경과학)는 말했다. "NGF는 한때 감각신경계에서만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생식계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의하면, 정액 속의 NGF는 혈류를 타고 암컷의 뇌로 들어가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임신에 필요한 호르몬을 방출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NGF가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에 작용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좀 더 연구되어야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오제다 박사는 덧붙였다.

※ 원문정보: Gregg P. Adams, "The nerve of ovulation-inducing factor in semen",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August 20, 2012, doi: 10.1073/pnas.1206273109 PNAS August 20, 2012
※ 참고문헌:
1. Adams, G. P., Ratto, M. H., Huanca, W. & Singh, J. Biol. Reprod. 73, 452?457 (2005).
2. Tanco, V. M., Van Steelandt, M. D., Ratto, M. H. & Adams, G. P. Theriogenology http://dx.doi.org/10.1016/j.theriogenology.2012.03.036 (2012).
3. Abir, R. et al. Mol. Hum. Reprod. 11, 229?236 (2005).

출처 : http://news.sciencemag.org/sciencenow/2012/08/semens-secret-ingredient.html?ref=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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